- “이정후의 한계? 하늘밖에 없어” SF 에이스도 감탄, ‘10G 연속 안타’보다 더 중요했던 것
- 출처:스포티비뉴스|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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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가 1-0으로 앞선 6회, 애리조나 선두 타자인 제이크 맥카시의 타구가 좌중간을 향했을 때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이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 이상의 장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을 믿지 않은 이가 한 명 있었다. 타구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완벽한 경로로 이를 쫓아간 뒤, 여유가 있어 보일 정도로 편안하게 잡았다.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였다.
이정후의 플레이에 마운드에 있던 샌프란시스코의 에이스 로건 웹도 두 팔을 들어 감사를 표했다. 웹도 맞는 순간 장타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0으로 딱 1점 앞서 있는 상황에서 무사 2루, 혹은 무사 3루가 되는 것은 투수에게 진땀이 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정후는 이런 상황을 막아냈다. 시즌 초반 한때 고전했던 이정후의 수비력이 정상 궤도로 돌아왔음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정작 이정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정후는 경기 후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일단 첫 발 스타트가 좋았던 것 같고, 맞는 순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 열심히 뛰어갔던 것 같다”면서 “자신이 없었어도 일단 잡으러 가지 않았을까”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어 “로건(웹) 뿐만 아니라 모든 투수들이 잘 던질 때는 외야에서 더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 더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만 드는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현지 언론은 이 겸손과 별개로 이정후의 뛰어난 수비력을 보여준 사례라며 주목하고 나섰다. ‘스탯캐스트’의 집계에 따르면 이 타구는 속도가 101.5마일(약 163.3㎞)이었고, 371피트(약 113.1m)를 날아갔다. 기대 타율은 0.670에 이르렀다. 심지어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필드였다면 넘어갔을 타구였다. 무려 지역 유력 매체인 ‘머큐리뉴스’는 20일 ‘매카시는 방망이에서 101마일의 속도로 떨어진 미사일을 날렸지만, 이정후는 그 지점을 향해 곧장 달려갔고, 펜스와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잠시 공에서 눈에 떼었다가 이를 재발견해 워닝트랙에서 전속력으로 달린 캐치를 했다’고 호평을 내렸다.
단지 컴퓨터만 어렵게 봤던 타구는 아니었다.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경기 후 이정후가 이를 잘 잡았다고 칭찬하면서 하나의 경기 중요 터닝 포인트로 뽑았다. 이정후의 옆에서 뛰는 우익수 마이크 야스트렘스키 또한 ‘머큐리뉴스’와 인터뷰에서 “비현실적인 수비였다. 그의 점프는 아주 좋았다. 그가 외야에서 뛰는 것을 보면 정말 재미가 있다. 치는 것도 그렇다”면서 “그의 수비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으로서 재미가 있다. 그 플레이들을 실제보다 훨씬 더 쉽게 보이도록 만든다”고 이정후의 수비력을 극찬하고 나섰다.
당시 마운드에 있었던 로건 웹 또한 경기 후 “그가 매일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솔직히 말해 하늘만이 그에게 한계라고 생각한다”고 이정후 호평에 동참했다. ‘하늘이 한계’라는 것은 시즌 초반 해에 가려 평범한 타구를 놓쳤던 그 장면을 연상시키는 발언이었다. 웹은 “실점을 줄이고, 안타를 잡아내고, 또 안타를 친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꽤 멋지다”면서 이정후 칭찬에 열을 올렸다.
이정후는 KBO리그에서 수비보다는 역시 공격이 더 큰 주목을 받았던 선수다.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에게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약 1558억 원), 포스팅 금액을 합치면 총액 1억3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 결정적인 배경이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최하위권까지 처진 팀 공격의 문제를 다방면에서 풀어줄 수 있는 선수라고 봤다. 다만 공격만 주목한 것은 아니었다. 수비도 좋다고 봤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이정후가 빅리그에서도 평균 이상의 중견수 수비를 보여준다고 입을 모았다. 단지 잘 치기만 하는 반쪽짜리 선수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는 수치로도 잘 나오고 있다. 이정후의 OAA(타구 속도 등 전체적인 타구질을 고려해 리그 평균보다 실점을 얼마나 방지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에서 +1로 양수를 기록하고 있다. OAA는 누적 성적이라 현재의 수비력을 보여준다면 이 수치는 꾸준하게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OAA는 기대 타율이 굉장히 높은 타구를 잡아낸 19일과 같은 모습에 후한 점수를 준다. 아직 이것이 반영이 안 된 상태라 앞으로도 이정후의 수비 점수는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송구 강도에서도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이정후의 송구 속도는 평균 92.9마일(약 149.5㎞)로, 이는 메이저리그 외야수 전체를 봤을 때 상위 5%에 해당한다. 19일과 같이 빠른 발로 잘 쫓아가기도 하는데 어깨까지 수준급이라는 소리다. 이정후의 수비력에 많은 언론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결국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려면 공격 하나로는 안 된다. 최소 리그 평균 이상의 수비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정후는 이를 가지고 있다.
이정후의 강점은 공격과 수비 외에 또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발이다. 이정후는 19일 홈구장인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경기에서 안타 두 개를 치며 이틀 연속 멀티히트 경기를 이어 갔다. 그런데 이날 이정후는 타구가 외야로 간 게 하나도 없었다. 두 개의 안타 모두 내야 안타였다. 이정후의 빠른 발이 만들어내고, 또 이정후의 빠른 발을 의식한 상대 수비의 압박감이 더해져 만들어진 성과였다.
1회 첫 타석에서는 유격수 방면 내야안타를 쳤다. 사실 잘 맞은 타구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찌됐건 인플레이를 만들어 낸 결실은 달콤했다. 애리조나 유격수 제이스 피터슨이 전력으로 뛰어 내려와 공을 잡았지만 송구까지 이어 가지는 못했다. 피터슨이 공을 잡아 1루를 봤을 때 이미 이정후는 1루에 거의 다다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던져봐야 악송구만 나올 수 있었기에 송구를 포기했다.
이정후는 3회 두 번째 타석에서도 투수를 맞고 유격수 방면으로 가는 내야안타로 멀티히트 경기를 완성했다. 굉장히 잘 맞은 타구였는데 이번에도 피터슨이 이정후의 발을 먼저 의식한 듯 공을 제대로 포구하지 못하면서 안타가 만들어졌다.
상대 수비수로서는 당연히 받을 수밖에 없는 압박이다. ‘스탯캐스트’ 집계에 따르면 이정후의 올해 스프린트 스피드(정점에 올랐을 때의 속도)는 초당 28.4피트(약 8.65m)로 메이저리그 상위 14% 수준이다. 여기에 주목할 만한 지표는 더 있다. 이정후는 올해 타격 후 1루까지 도달 속도가 평균 4.2초에 불과했다. 발이 빠른 데다 타격 후 주루로 옮겨가는 이행 과정이 짧고 여기에 1루에 더 가까운 좌타자라는 이점까지 등에 업은 성적이다. 홈에서 1루까지 도달 속도는 메이저리그에서 9위에 올라 있을 정도의 특급이다. 단순히 이정후는 공격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다.
팀의 5-0 승리와 함께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한 이정후는 이제 11경기 연속 안타 행진에도 도전한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역사상 10경기 이상 연속 안타를 기록한 선수가 많지는 않은데 이정후의 행진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정후는 최근 10경기 동안 타율 0.349(43타수 15안타)를 기록하며 힘을 내고 있다. 장타가 조금 적다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현재의 흐름을 이어 가면 언젠가는 나올 이벤트다. 안타 행진 이전까지 0.200에 머물던 타율은 어느덧 3할을 바라보는 0.282까지 올라왔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역사상 데뷔 시즌에 두 자릿수 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한 건 2015년 강정호(당시 피츠버그·2015년 5월 17일~2015년 5월 29일), 2016년 김현수(당시 필라델피아·2016년 7월 27일~8월 9일)까지 두 명에 불과하다. 강정호는 5월, 김현수는 7월이었는데 이정후는 시즌 극초반이라고 할 수 있는 4월부터 이 기록에 도전한다. 이정후의 남다른 적응력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일 애리조나와 경기에서도 안타를 치면 11경기 연속 안타가 되고, 이는 한국인 선수 최장 기록을 도전할 발판이 된다. 한국인 선수 역대 최고 기록은 2013년 추신수(당시 신시내티·현 SSG)와 2023년 김하성(샌디에이고)이 가지고 있는 16경기다. 추신수는 14경기 연속 안타도 두 차례 기록한 바 있다. 최지만(당시 탬파베이·현 뉴욕 메츠)은 2022년 13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한 바 있다. 11경기 이상 연속 안타 기록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 선수는 추신수 김하성 최지만까지 세 명에 불과하다. 이정후가 이 대열에 오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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