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 입어 무르익었다…장명선, '천사의 몫'은 천사에게
- 출처:뉴시스|202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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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정규 음반 발매
25일 고라니특공대서 정규 2집 발매 기념 쇼케이스
열심히 상처 입어 나는 오히려 무르익었다. 싱어송라이터 장명선은 정규 2집 ‘천사의 몫‘ 라이너 노트에 이렇게 썼다.
장명선은 이런 뮤지션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가혹하게 대한 흔적이 있다. 가사와 멜로디가 음악가의 통제를 비집고 나와 도망간 상흔도 있다. 그런 과정이 그런데 노래로서 모두 유일무이해졌다.
불가항력적으로 삶이 외면 당한 뒤 오히려 자신에게 집중된 삶의 아이러니. 그래서 장명선의 노래는 삶을 은유하는 것이 아닌 생포하는 게 된다.
그래서 장명선은 ‘천사의 몫‘이 아깝지 않다. 와인이나 위스키를 보관하는 중에 증발한 술을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고 한다. 고통의 유량(流量)이 넘치는 삶에도 ‘천사의 몫‘이 필요하다. 그로 인해 시간과 경험을 빼앗긴다고 해도 무엇인가 넘치는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일일 수 있으니까. 장명선은 그렇게 천사의 몫을 돌려주고, 자신의 진정한 몫을 얻었다. 천사의 것은 천사에게, 장명선의 것은 장명선에게, 청자들의 것은 청자에게.
장명선 2집 ‘천사의 몫‘은 듣고 공감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여운의 몫을 남긴다. 다음은 최근 서울 문래동에서 장명선과 나눈 일문일답. 문래동은 그로테스크한 예쁜 공장을 떠올리게 하는 장명선의 음악과 묘하게 닮았다.
-5년 만에 발매한 정규음반인 2집에 대한 반응이 좋습니다.
"정규 1집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2018)은 음반 내고 싶다는 마음만 갖고 완성한 뒤엔 별로 관심이 많지 않았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확실히 음반 이후의 것들에도 조금 신경을 쓰고 작업을 하긴 했어요. 그러니까 뭔가 더 사람들에게 어필을 하고 싶고 많이 들려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1집 때는 왜 기대를 안 하셨었어요?
"더 많이 들려주기 위함의 목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걸 했고 그저 ‘작품을 하나 만들자‘ 이게 목표였어요. 그 이후에는 많이 신경을 쓰지 못했죠."
-그러면 이번에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생겨난 건가요?
"1집을 내고 외부 활동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무대도 그냥 1년에 몇 번 정도만 섰죠. 무엇보다 무대를 너무 무서워했어요. ‘무대 공포감‘을 느꼈죠. 그렇지만 이제 많이 치료가 됐죠. 나아지는데 4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이제는 사람들이랑 연결되고 싶고 무대도 더 많이 하고 싶고 더 들려주고 싶어요. 무대에 많이 설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좀 더 연결되고 싶다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건가요?
"한동안 서울을 떠나 있었어요. 1집 발매 이후 서울이 아닌 지역에 정착을 시도했어요. 근데 정착에 실패를 했거든요. 다시 작년 9월쯤 서울로 올라와서 ‘다 망했다. 어쩌지‘ 이러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무대에 다시 서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무대 공포증이 좀 없어진 느낌이 들었죠. 지역에 내려가서 고생한 것들이 저를 엄청 단단하게 키워준 거 같았어요. 겁이 없어지고, 그 사이에 요가 수련도 했고, 상담도 꾸준히 받았고… 여러 가지 요소들이 저를 튼튼하게 만들어줬죠. 결론적으로 무대에 다시 섰을 때 안 무서웠고, 사람들이랑 더 연결되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 그래서 음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뜻하지 않게 지난 4년 간 일종의 치유의 여정을 하게 된 거네요. 그럼 이번 앨범에 실린 음악들은 서울로 다시 올라와서 만들기 시작한 건가요?
"여덟 트랙 중 두 개는 스케치 정도는 있었고 나머지는 다 올라와서 만들었어요. 본격적인 작업은 올라와서 한 거죠. 우선 제가 겪은 고난에 대해서 풀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잘 안 됐어요. 무슨 얘기를 해야 될지 몰랐거든요. 근데 상담 선생님이 ‘명선 씨가 겪은 고통과 고난이 명선 씨가 갖고 있던 깊은 오래된 문제들을 많이 해결해 줬다‘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제일 오래된 문제가 불안이었는데 험한 일 겪으면서 거의 없어진 거죠. 모순되게도요. 바닥을 쳤다는 느낌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노출 치료를 한 거죠. 그래서 ‘내 고통이 좋게 작용하는 그 내용을 써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친구가 ‘천사의 몫‘이라는 와인 용어를 알려줬어요. 자연 증발해 없어지는 걸 가리키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제 빼앗긴 경험들, 빼앗긴 시간들이 좋게 작용을 했다는 느낌으로 다가왔거든요. 그 단어 자체의 느낌이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과 결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4번 트랙인 ‘천사의 몫‘이 만들어 지고 그 곡을 중심으로 계획을 세워서 앨범을 만들었죠."
-그래서 쭉 유기적으로 들린 거군요. 일종의 콘셉트 앨범처럼 된 거네요. 그런 가운데 첫 트랙 ‘도망‘은 어떻게 만들어진 겁니까?
"지역에서 다 망해 서울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진짜 도망치듯이 올라갔어요. 그곳에 있던 짐도 다 안 갖고 그냥 몸만 나왔어요. 근데 저는 도망친 거를 후회하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도망친 뒤 많은 사람들이 절 도와줬고, 도망쳐 벗어나는 것도 저한테 용기가 필요했던 거였죠. 결론적으로는 진짜 잘한 행동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도망친 것에 대해 판단하는 건 자유지만 도망간 것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으니 반대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면 ‘재밌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죠. 음악적으로 드럼 베이스를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되게 컸었는데, 도망친 게 이번 제 앨범의 시작이니 그 곡이 첫 트랙이 된 거죠. 제 음반이 이전까지 좀 잔잔했지만 이번엔 초장부터 ‘나 좀 달라졌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도망‘의 마지막쯤에 제가 ‘하나 둘 셋 넷‘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근데 그게 1집 마지막 트랙 ‘이다음에는‘의 ‘하나 둘 셋 넷‘이거든요. ‘나 이렇게 변했어. 근데 똑같은 나야‘라는 걸 오랜 팬들에게 이렇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두 번째 트랙 ‘타워 오브 바벨(Tower of Babel)‘에 대해선 ‘일종의 치료‘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떤 사람한테 상처를 받으면 ‘내가 상처받았어‘라고 얘기를 하거나 아니면 뭔가 싸움을 하거나 그렇게 했어야 됐는데 생각해 보니까 저는 그렇게 한 적이 거의 없더라고요.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약간 참았어요. 그게 저와 상대방, 둘 다 위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근데 사실은 제 안에도 분노가 있고 부정적인 감정들도 있어요. 근데 제가 그걸 표현하기 되게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상담을 받고 하면서 느낀 건 제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에 엄청 죄책감을 갖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근데 그걸 이제 발견하고 나니까 너무 표출을 하고 싶은 거예요. 도망쳐서 희망만 있는 게 아니고 너무 힘든 것도 있는데 그것도 담고 싶었어요. 희망이나 사랑만 담지 말고요. 그런 생각을 한번 표출하는 트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가사를 계속 못 썼어요. 어느 날 갑자기 울음 터지듯이 써졌고 분노에 가깝게 표현하게 된 거 같아요. 도망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계속 가지니까 상담 선생님이 ‘명선 씨는 먼저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이 제일 필요하다‘고 했죠. 힘듦을 표현하는 게 제 치료였고 결론적으로는 되게 시원했어요."
-그 다음 트랙이 ‘마음 빚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네요.
"네 맞아요. 표출을 하고 나서 조금은 진정을 할 수 있게 돼서 나온 트랙이 ‘마음 빚기‘예요. 건강하게 사랑하는 방법, 건강하게 관계 맺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고 많이 생각했어요. 그런 희망이 묻어 있는 노래죠."
-이렇게 앨범 설명을 듣다 보다 보니 앨범 트랙 배치가 천사가 가운데서 날개를 펼쳤는데 양쪽 날개가 감정의 ‘그러데이션(gradation)‘를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앨범 커버 콘셉트 아트워크도 물에서 그러니까 암흑에서 빠져나오는 이미지에요. 그 암흑에서 다 빠져나와 앞을 응시하는 것이거든요."
-‘천사의 몫‘에 래퍼 슬릭 씨가 같이 해야 되는 이유가 있었던 건가요?
"제가 원래 랩을 하려고 했어요. 실제 제가 랩을 했는데 프로듀서인 피슈(Piano Shoegazer·피아노 슈게이저)가 아쉽다고 했어요. 제가 랩을 더 연습하거나 주변 래퍼에게 강의를 받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죠. 슬릭 님과 평소 친분이 있어서 ‘원데이 레슨‘을 받았어요. 근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랩이 일단 너무 어렵고 정말 테크닉이 필요한 작업이더라고요. 슬릭 님이 제 거에다 얹어서 연습같이 데모를 해주셨는데 너무 잘해서 제 랩을 들을 수 없게 된 거예요. 연습을 해도 도저히 안 돼서 슬릭 님에게 피처링을 맡기게 된 거죠."
-‘사랑의 빛‘은 일종의 팬송입니다.
"제게 사랑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옆에 온다는 걸 느꼈어요. 이걸 평생 ‘사랑의 빛‘으로 잘 간직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주변을 위한 헌정곡이면서 저를 위한 곡이기도 하죠."
-‘마지막 겨울‘ ‘네이처 이즈 유(Nature is you)‘ ‘안녕 아닌 안녕‘은 묶어서 자연 3부작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저도 그걸 의도하기도 했어요. ‘사랑의 빛‘까지 갔으면 어느 정도 치유된 느낌이 많이 들죠. 이후에는 더 강력한 게 필요했어요. 강렬한 사랑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는데 그 강력한 느낌을 주는 게 바로 ‘네이처 이즈 유‘였어요. ‘너와 함께하면 어젤 잊을 수 있어 내일을 잊을 수 있어‘라고 노래할 수 있는 건 사랑에 대한 엄청난 믿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들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근데 ‘사랑의 빛‘에서 ‘네이처 이즈 유‘로 바로 넘어가는 게 너무 부자연스러운 거예요. 갑자기 너무 강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서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 겨울‘이 중간에 들어가게 된 거죠. 시간의 흐름에 치유가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시간이 흘러 강력해진 화자가 강력하게 사랑을 말하는 게 ‘네이처 이즈 유‘가 된 거죠. ‘안녕 아닌 안녕‘은 에필로그 같은 느낌으로 잔잔하게 ‘이제 힘든 거 다 끝이야‘ 하는 느낌이에요. 이제 힘든 거는 안녕이고 ‘나는 새롭게 안녕 하며 또 다른 걸 맞이할 거야‘ 이런 느낌으로 끝나요."
-명선 씨도 앨범 작업이 끝나고 치유 받는 느낌이 들었나요? 스스로 치유가 됐으면 다른 사람들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을 거 같은데요.
"사실 이번 앨범이 희망의 메시지나 치유로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은 많이 안 했어요. 물론 저한테는 그랬지만 이 음반을 만들면서 다른 분들한테 다가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다만 이런 마음 정도는 있었던 것 같아요. 현재 세상이 냉소로 너무 가득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그리고 그 냉소적인 게 쿨한 게 돼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그 냉소적인 멋진 게 되기도 하고요. 근데 저는 사실 냉소주의적인 거를 별로 안 좋아해요. 희망을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앨범을 만들면서 듣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희망을 갖고 살아야지‘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는 있었던 것 같아요."
-원래 패션을 전공하셨어요. 시각적인 작업도 뛰어나서 패션을 계속 공부하셨어도 잘하셨을 거 같아요.
"패션 쪽은 너무 재밌긴 한데 너무 빠르잖아요. 그리고 외향적인 집단 같은 느낌인데 저랑은 그런 게 맞지는 않았어요. 대신에 손으로 무엇을 하는 건 좋아해서 집에서 가볍게 무엇인가를 만들기는 해요. 근데 업으로서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명선 씨에게 영감을 준 뮤지션은 누구이고, 어떤 음악을 많이 들었습니까?
"일단 제 뿌리 같은 사람들을 찾아보면 한희정 님, 시와 님 같은 인디 포크 음악가들이에요. 요조 님 같은 분들은 너무 닮고 싶어 했고요. 그래서 사실 포크로 시작을 했어요. 근데 제가 기타를 너무 못 치더라고요. 그래서 포크를 포기했죠. 이후 일렉트로닉에 끌리게 됐죠. 메시지적으로 봤을 때는 아오바 이치코 님, 아이유 님처럼 메시지가 굉장히 따뜻하고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뮤지션처럼 되고 싶어요. 그렇게 선한 느낌이 있는 음악가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네이버 온스테이지 무대도 그렇고 명선 씨가 해온 영상 작업의 미니멀함 등의 부분에서 자연의 기본적인 요소를 재현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단은 자연의 소리를 수집, 변형, 배열하는 자체(네이처트로니카)가 제 포인트는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자연에서 영감을 좀 많이 받는 편이에요. 평소 삶에서도 계절이 변화할 때마다 몸도 마음도 같이 변화하는 걸 많이 느껴요. 그 계절 속에서 뭔가 찾고 자연의 모양 속에서 저랑 동질감 같은 걸 많이 느끼죠. 요가할 때도 되게 영감을 많이 받아요. 저의 근원같이 느껴질 때가 많아요. 제 음악이 방법론적으로는 전자 음악인데, 결국에는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자연 쪽에 가까워서 그게 좀 독특한 것 같긴 해요."
-25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고라니특공대에서 2집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여십니다.
"일단 제가 무대 공포증이 있을 때는 사람들 대하는 것도 너무 어려워해 누구랑 같이 공연을 준비한다는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관현악 세션을 꼭 넣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그래서 이번에 첼로 세션이랑 같이 협업을 한 곡이 들어갔어요. 피아노 슈게이저가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고 어쿠스틱 세션인데 플레이백도 깔려 있어서 전자 음악이랑 어쿠스틱 세션이 함께 하는 풍성한 사운드를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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