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을 땄을 때보다도,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29·강원도청)에게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은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겨질 듯하다.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5위를 차지했다. 4년 전과 달리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경기를 마친 김보름은 눈시울을 붉혔다. 메달을 못 땄다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터. 하지만 김보름의 눈물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고, 레이스 뒤로 박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김보름은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 메달을 따고도 고개 숙였던

김보름은 평창 대회에서 매스스타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맘껏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더 많이 해야 했다. 앞서 출전한 팀 추월에서 이른바 왕따 논란이 발생한 까닭이다. 설상가상 김보름이 주동자로 지목됐다. 거센 비난이 일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원 문을 두드렸을 정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잠도 못 이뤘다. 김보름은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 ‘다시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까’ 걱정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진실을 알리려 노력했다. 선수생활을 떠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평창 대회가 끝난 뒤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왕따 주행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개인적으로도 움직였다. 2020년 11월 노선영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며 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36부는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노선영은 이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 메달은 없어도 환한 미소를

가장 두려웠던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올림픽이라는 무대 위에 홀로 서 있을 자신을 상상했다. 김보름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됐을 때,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다”고 전했다. 보다 굳은 마음가짐으로 나섰다. 김보름은 “지난 4년 동안 너무 힘들었지만, 아픔과 상처가 조금은 아물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면서 “베이징올림픽이 끝났다. 지금부터 마음을 다잡으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고 강조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 사람들의 응원으로 치유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김보름은 수많은 응원을 받았다. 김보름은 “일부로 하나하나 읽어보려 노력했다. 정말 마음에 와 닿는 말들이 너무 많더라. 하나를 꼽기 너무 어려운데 ‘이미 우리에겐 금메달입니다’라는 말이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실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다. 혼자 무너질 때도 많았다. 스스로 ‘버텨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는 밝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